98m의 팔조령 고개를 넘어  청도에 있는 운문사에 가보자     운문사는 여승들의 수도장 경내 전체가 마치 잘 꾸며진 정원처럼 정갈하고 깨끗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까지 여승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청순하고 쾌활한 여승들이 엄격한 계율 속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 있다       봄이면 상큼한 딸기가 농가를 붉게 물들이고, 여름이면 복숭아와 수박이 입안 가득 시원함을 안겨주고 겨울에는 새콤달콤 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8월도 저물어 간다. 더위가 좀처럼 꺽이지 않는다.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그리워진다.   가을, 이 계절의 청도는 주황빛 감으로 가득하다. 가지마다 탐스럽게 익은 감은 그 자체로 빛이 되고 들녘의 바람마저 달콤해진다. 청도는 감의 고장이다. 마을 어귀에 걸린 감빛을 보기만 해도 절로 군침이 돌고, 가을의 풍요로움이 피부로 와 닿는다.   대구에서 청도를 가려면 넘어야 고개가 있다. 바로 팔조령이다.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에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청도군 이서면에서 달성군 가창면으로 넘어가는 여섯 개의 주요 고개, 즉 우록재, 봉화재, 팔조령, 범재, 독지재, 상원산재 중에서 가운데 있는 팔 조령은 가장 낮은 해발 고도 398m의 고개이다.   조선 시대 한양으로 향하는 큰길인 영남 대로의 일부였다. 사람과 짐이 끊이지 않았고 상인들의 발자국과 말발굽 소리가 오가던 길이었다. 지금은 팔조령 고개를 넘는 도로와 터널 개통 등으로 인하여 현재는 관광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대부분의 길이 진흙길이었던 것과는 달리, 팔조령 고갯길은 넓적한 돌을 깔고 그 틈새를 메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박석(薄石) 포장길이었다고 전한다.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지만, 흙이 아닌 박석 포장길이었을 당시 이곳의 통행량과 중요성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청도는 경산시와 밀양시, 대구시에 가려진 고장이지만 복숭아와 감, 소싸움, 새마을 운동 발상지로 잘 알려진 고장이다. 최근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천후 경기가 가능하도록 국내 최초 자동 개폐식 돔형 경기장인 청도소싸움경기장을 개장했다. 매주 주말마다 흥겨운 축제마당을 펼치고 있다.   물과 산, 인심이 맑아 예로부터 `삼청의 고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도불습유라고 해서 길에 떨어져 있는 물건이 아무리 욕심나는 것이라도 자기 것이 아니면 절대 주워가지 않는 아름다운 풍습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제 청도로 여행을 떠나보자.       비구니 승가대학 운문사   청도에 가면 운문사가 있다.   운문사는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다. 중국 당나라시대 선사인 운문종 개창조 운문문언의 이름에서 따왔다. 비구니 사찰이고, 비구니 교육 전문 승가대학인 운문승가대학이 있다. 부속 암자 가운데는 나반존자 기도 도량인 사리암이 가장 유명하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21년(원년) 창건한 절이다. 그 후 원광법사가 중창하고 세속오계를 내려줌으로써 화랑정신의 발원지가 됐다는 이야기는 이곳이 단지 불교의 도량을 넘어 한 시대의 정신적 지주였음을 보여준다.   고려 태조 왕건이 ‘운문선사’라는 이름을 내린 것도 이 사찰의 깊은 의미를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운문사는 전국 최대 규모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여승들이 모여 경전을 배우고 수행하며 고요 속에서도 삶의 단단한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경내를 거니는 이들에게 묘한 평온과 힘을 동시에 전해준다. 운문사는 5학년 2학기 2단원에 소개된 ‘고려문화의 발전’과 ‘불교문화’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공부할 수 있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매우 융성한 시기였다. 그 시대의 건축 양식과 신라 말~고려 초에 걸친 운문사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2023년 5월 4일부터 무료입장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면제는 문화재 관람료이고, 자동차를 타고 오면 주차비는 내야 한다.         좋은 향내 맡는 사찰 운문사   7월이 시작된 게 바로 엊그제 같 은데 어느 사이엔가 9월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곧 가을향기 잔뜩 머금은 단풍잎들이 형형색색 수를 놓는다. 단풍잎을 봐야만 꼭 가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젓한 산사를 찾아가는 길목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가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가을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솔 향. 그 기분 좋은 향내를 맡으며 찾아갈 수 있는 사찰이라면 단연 운문사를 첫손에 꼽을 수 있다. 구슬처럼 맑은 운문천 의 물소리와 울창한 노송 숲이 매우 인상적인 사찰이다.       세속 오계를 지은 명산 운문산   청도의 가장 대표적인 사찰인 운문사는 청도읍에서 동쪽으로 40km쯤 떨어진 운문산(해발 1188m)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일명 호거산이라 불리기도 하는 운문산은 재약산, 가지산, 신불산, 취서산 등과 함께 영남알프스를 이루는 고봉 가운데 하나다. 먼 옛날 원광국사가 화랑도의 신조인 세속오계를 지은 명산 이기도 하다. 이처럼 유서 깊은 운문산의 북쪽 기슭 햇볕 잘 드는 곳에 운문사가 자리를 틀고 앉아 있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인 560년에 보양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보양국사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살았던 승려이므로 이 같은 설명은 다소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보양국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금의 운문사 자리에다 사찰을 지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래 진흥왕 때 누군가에 의해 초창된 사찰이 폐허가 됐고, 그 자리에다 보양국사가 다시 중창을 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중창 당시의 사찰 이름은 작압사였다. 937년에 고려태조 왕건으로부터 운문선사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작압사는 운문사로 불리 게 됐다.         운문사 여승들의 수도장   운문사는 여승들의 수도장인 만큼 경내 전체가 마치 잘 꾸며진 정원처럼 정갈하고 깨끗하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그마한 돌멩이 하나까지 여승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청순하고 쾌활한 여승들이 엄격한 계율 속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   사찰의 참 모습을 보려면 해가 진 후 또는 해가 뜨기 전에 찾아 가야 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스님들의 바루공양에 참여하고 하루나 이틀 정도 선방에 머물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삶에 대해 한 번쯤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이다. 일정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방문길을 서둘러서 새벽 예불에 참여해 볼 일이다.   공부하는 스님들이 많은 운문사의 새벽 예불은 그 청아함과 경건함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새벽 예불은 일반적으로 4시 30분에 시작해서 5시 30분경에 끝난다. 6시부터는 아침 공양(식사)이 시작되는데, 일반 신도들에게도 공양간(식당)을 개방하고 있다.         천년의 그늘, 처진소나무   운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령이 500년에 이르는 처진 소나무 다.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돼 있는 이 노거수는 줄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처져 있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마치 무거운 세월을 짊어진 듯한 그 모습은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재미있는 것은 해마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이면 나무 주위에다 막걸리 12말을 희석해 뿌리는 일이다. 물도 아닌 막걸리를 뿌리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그 유래와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그 나무에 기대어 소망을 빌고 안녕을 기원했을 것이다.       운문사의 사계   운문사는 어느 계절에 찾아도 특별하다. 봄에는 산 벚꽃과 매화가 경내를 밝히고, 여름이면 운문천이 맑은 물소리를 내며 산사를 시원하게 적신다. 가을이면 단풍잎이 수놓은 길 위로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지고, 겨울에는 고요히 쌓인 눈이 사찰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더한다.   특히 가을의 운문사는 색채의 향연이다. 솔숲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바람은 송진향을 실어 나르고, 단풍잎은 붉고 노랗게 물들어 경내를 장식한다. 그리고 멀리서 감나무들이 주황빛 열매로 반짝이는 모습은, 이 계절이 청도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를 말해준다.   역사가 오래된 사찰인 만큼 운문사 경내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신라 때 만들어진 구리 항아리인 동호를 비롯해서 비로전, 금당 앞 석등, 3층석탑, 원응국사비, 석조여래좌상, 사천 왕석주등이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본래 사찰 이름에서 유래된 작은 전각인 작압전과 대웅보전, 오백나한전, 만세루 등과 같은 크고 작은 건물들이 있다.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을 개설한 운문사는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 현재까지 경전연구기관으로써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다.       운문사 연혁   ▣ 삼국 시대 560년(신라 진흥왕 21년) 신승(神僧)이 도우 10여 명과 함께 5개의 절인 오갑사를 창건했다. 중앙의 이름을 대작갑사(大鵲岬寺)라고 했고, 지금의 운문사다. 608년(신라 진평왕 30년) 원광국사(圓光國師)가 중건했다.   ▣ 고려 시대 937년(태조 20년)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건, 이름을 작갑사(鵲岬寺)라고 했다. 943년(태조 26년) 고려 태조 왕건이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렸다. 이후 운문사(雲門寺)라 불리게 된다. 1105 년(숙종 10년)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창했다.   ▣ 조선 시대 1592년(선조 25년) 이후 임진왜란 때 당우의 일부가 불탔다. 1690년 (숙종 16년) : 설송(雪松)이 중건했다.            운문사 주요 볼거리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보물 제835호)  대웅보전은 숙종44년(1718)에 중건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각으로 운문사에서 제일 큰 전각이다. 운문사의 모든 비구니들이 예불을 올릴 수 있을 만큼 크다. 운문사의 중심이자 심장같은 대웅보 전. 지붕의 곡선은 하늘로 흐르고, 기둥에 스민 나무의 결은 땅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서면, 사찰 전체의 기운이 하나로 모여드는 듯하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진다. “세상의 중심은 늘 조용한 곳에 있었다.”     청도 운문사 금당 앞 석등(보물 제193호) 금당 앞에 놓여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8각 석등은 각 부분의 조각 수법이 뛰어나고 잘 균형을 이룬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지켜온 등불의 자리다. 아침 햇살이 돌기둥에 스미면, 마치 부처님께 올리는 기도가 빛이 되어 하늘로 번져가는 듯하다. 석 등 앞에 서 있으면 절집의 고요함 속에서 내 안의 번잡스러움도 함께 잠잠해지는 기분이 든다.“빛은 돌 속에 머물러도 천년을 두고 꺼지지 않는다.”     청도 운문사 동호(보물 제208호) 고려 시대에 청동으로 만든 물항아리로 원통형에 가까운 몸체와 특이한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로준(甘露樽)이라는 이름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불교 용구로 짐작된다. 그 빛깔이 은은히 푸르스름하다. 단순한 물그릇이 아니라, 절집의 맑은 샘을 담아내는 그릇이라 더 특별하다. 항아리의 고즈넉한 자태 앞에 서면, 세속의 갈증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청동빛 항아리 속에는 물이 아니라 맑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청도 운문사 원응국사비(보물 제316호) 원응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고려 시대의 석비로 입적한 해인 고려 인종 22 년(1144)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글씨는 바래고, 돌은 닳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신은 여전히 단단여 무언의 가르침이 바람결에 전해지는 것 같다.“돌 위에 새긴 글씨는 희미해도, 스승의 뜻은 산보다 깊다.”       청도 운문사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   가부좌를 틀고 앉은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석조여래좌상은 절의 중심처럼 느껴진다. 부드럽게 내려앉은 미소는 보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풀어내 주고 불상 앞에 앉아 있으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벗을 만난 듯 따뜻함이 스며든다. “부처님의 눈빛 속에는 말 없는 위로가 흐른다.”     청도 운문사 석조사천왕상(보물 제318호) 언제나 절을 수 호하는 장엄한 모습으로 압작전에 봉안돼 있다. 힘찬 표정 과 웅장한 체구는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히 등을 곧추세 우게 만든다. 하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안에 담긴 자 비와 결연함이 함께 전해진다. “강한 자의 얼굴에는 언제나 온화함이 깃든다.”     청도 운문사 동· 서 삼층석탑(보물 제678호)     쌍둥이처럼 나란히 서 있는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 석탑 형식의 동 · 서 삼 층석탑은 운문사의 시간 지킴이다. 햇살이 탑을 비추면, 돌의 결 사이로 흘러든 세월이 보인다. 여행객이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자리에서, 두 탑은 서로를 비춰주듯 묵묵히 서 있다.  “탑은 하늘을 향해 뻗었으나, 마음은 땅을 향해 머문다.”     청도 운문사 비로자나삼신불회도(보물 제1613호) 한 화폭에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불, 노사나불 등 삼신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을 함께 그린 삼신불회도로서 처일(處一) 과 성징(性澄), 유성(有性), 포관(抱寬) 등 19명의 화승이 함께 제작한 비로자나삼신불회도는 색채의 향연이다. 1755년작.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그림 속에서, 삼신불이 펼쳐낸 우주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화폭 앞에 서면, 색의 깊이가 곧 사상의 깊이임을 느끼게 됩니다.“붓끝 하나에도 천년의 사상이 스며든다.”     청도 운문사 대웅보전 관음보살· 달마대사 벽화(보물 제1817 호) 대웅보전 후불벽 뒷면에 높고 험준한 바위산으로 화면을 나누어 관음보살과 달마대사 벽화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벽화 앞에 서면, 그림 속 인물들이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관음보살의 눈빛은 자비롭고, 달마대사의 기운은 강직하여, 보는 순간 두 감정이 동시에 밀려온다.“벽에 그려진 눈동자는 천년이 지나도 여전히 살아 있다.”       여행의 끝, 마음의 울림 운문사를 떠날 즈음이면, 언제나 마음속에 잔잔한 울림이 남는다. 그 울림은 범종의 소리일 수도 있고, 여승들의 맑은 눈빛일 수도 있다. 혹은 500년 세월을 버텨온 처진 소나무의 그늘일 수도 있다.   팔조령을 넘어 도착한 운문사는 단순히 눈으로 보는 사찰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과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한 편의 긴 이야기이며, 그 이야기 속에 잠시 나를 앉히는 일이다. 언젠가 또다시 가을이 깊어 가면, 나는 이 길을 다시 걸을 것이다. 팔조령의 고갯길을 따라 청도의 향기 속으로, 그리고 운문사의 고요한 종소리 속으로. 그때도 지금처럼, 삶에 지친 나를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라 믿는다. 김영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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