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가 싶더니 어느새 봄바람 분다.천년의 향기에 봄의 여신도 고개 숙인다.바로 신라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경주다.
겨울인가 싶더니 어느새 봄이다. 봄바람이 절로 부니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어디든 여행을 떠나기 참 좋다.
경주는 그윽한 야경을 즐기며 낭만적인 밤을 보내기에 좋은 도시다. 경주는 온천지 벚꽃이 장관을 이룬다. 밤에 핀 벚꽃은 보는이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어둠이 내린 월성 지구와 대릉원 지구의 고분이 달빛과 조명 아래 한층 부드러운 곡선을 드러낸다. 첨성대, 월정교,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 등 천년 고도의 유적이 멋진 경관 조명 아래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문무대왕릉이 있는 경주 동해권에서는 통일신라 삼층석탑의 시원(始原)이 된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도 만날 수 있다. 등대와 바다, 역사와 유적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사계절 계속 가고 싶은 바다의 여운을 만난다.
경주 야경 여행 월성지구
경주 야경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월성지구다. 월성지구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경주 역사유적지구 다섯 곳 중 한 곳으로 신라 궁궐이 있던 월성,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 내물왕릉, 첨성대,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인 동궁과 월지를 아우른다.
월성지구의 유적은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을 만큼 가깝고, 복원 중인 월정교와 교동 최씨 고택이 자리한 교촌마을이 지척에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
본격적인 야경 여행에 나서기 전, 교촌마을부터 들르자.
교촌은 682년(신문왕 2)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세워진 곳으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사랑을 나눈 요석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시대 400년 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경주 최 부자 가문의 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 27호)을 중심으로 전통 한옥이 복원돼 신라 속 조선의 문화를 만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유리 공방, 천연 염색 체험장, 국악 체험장, 전통찻집, 한식당 등 관광객을 위한 문화 체험 시설과 편의 시설을 갖췄다. 매달 첫째 토요일에는 저잣거리에서 60분간 흥겨운 공연도 펼쳐진다. 최씨 고택 관람 마감은 오후 6시다.
월정교, 첨성대, 동궁과 월지에 조명이 들어오는 시각은 일몰 직후인 8시 무렵이니 그 전에 주변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면 좋다.
여행자들 사이에 입소문 난 식당이 첨성대 맞은편에 모여 있다.
콩국수 전문점 ‘경주원조콩국’에서는 진하고 고소한 콩국수, 따뜻한 콩국, 해물 비지전을 맛볼 수 있다. 게장 전문점 ‘서산돌’은 간장돌게장과 양념돌게장이 함께 나오는 게장백반이 맛있다. 게딱지 속 장을 모아 참기름과 깨소금에 비빈 어린이용 게알비빔밥도 있다.
칼칼한 맷돌순두부찌개, 고명이 화려한 진주냉면도 여름철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다.
차량으로 10여분 거리의 숲머리 음식단지로 가면 숯불갈비, 토종닭 요리, 한정식, 맷돌순두부, 매운탕 등 다양한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야경 여행은 첨성대, 월정교, 동궁과 월지에 경관 조명이 들어오는 8시 전후에 시작한다.
교촌마을 앞 남천을 가로지르는 월정교는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라 올라갈 수는 없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는 야경이 황홀하다. 교각 상면이 누각 형태로 된 누교(樓橋)였을 것으로 추측하는데, 낮에도 잔잔한 물에 비친 누각이 아름답다.
교촌마을 향교 옆 계림 지나면 첨성대
교촌마을 향교 옆으로 계림을 지나면 첨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왕궁 앞에 세운 첨성대(국보 제 31호)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졌다. 야경으로 이름난 명소답게 관람객이 몰린다.
월성 지구 야경 여행은 동궁과 월지(사적 제18호)에서 마무리한다. 동궁은 태자가 살던 신라 왕궁의 별궁, 월지는 동궁 안에 있는 연못이다. 그동안 안압지 혹은 임해전지로 불리다가 2011년 경주 동궁과 월지로 명칭이 바뀌었고, 연못과 건물 세 채가 복원됐다. 동서 200m, 남북 180m, 둘레 1000m로 크지 않은 연못인데 가장자리에 굴곡이 많아 어느 곳에서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월성 지구에서 차량으로 50분 거리에 위치한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도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감은사는 삼국 통일의 위업을 이룬 문무왕이 왜적을 막고자 경주로 통하는 동해 어귀에 짓기 시작한 사찰로, 아들인 신문왕 때(682년) 완공됐다. 지금은 금당 터와 탑 두 기만 남았지만, 1300여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두 탑에는 장중한 기백과 기품이 서려 있다.
천년 고도의 유적을 따라가는 야경 여행을 마친 뒤에는 마사지로 피로를 풀거나, 막창으로 출출한 속을 달래면 좋다.
보문관광단지에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태국식·중국식 마사지 업소가 많다. 코모도호텔 옆에 지난해 오픈한 ‘중국전통마사지’는 깔끔하고 쾌적한 시설로 가족이나 커플 여행객에게 인기다. 발 마사지, 두피 마사지, 전신 마사지 등을 받을 수 있다.
야식이 생각나면 시내에서 가까운 동대사거리 근처 막창골목을 찾자. 노릇노릇하게 구운 막창에 장을 듬뿍 찍어 먹다 보면 둘이 기본 3인분에 1인분 추가는 필수다.
당일 여행 코스는 교촌마을에서부터 시작한다. 교촌마을을 둘러본 후 월정교 야경을 감상하자.
첨성대 야경을 본 후 동궁과 월지 야경을 즐긴다. 출출해졌을 테니 동대사거리 막창골목에서 배를 채우고, 보문관광단지에서 마사지를 받고 집에 온다. 1박2일 여행 코스의 시작도 교촌마을에서 시작한다.
교촌마을을 지나 월정교, 첨성대, 동궁과 월지의 야경을 즐긴 후 동대사거리 막창골목에서 막창을 먹고 첫째 날을 마친다.
다음 날에는 대릉원 일대를 들른 후 보문관광단지에서 마사지를 받고, 문무대왕릉(대왕암)을 감상한 뒤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야경을 즐기고 돌아온다.
시간이 더 있다면 봉황대 뮤직스퀘어에서 열리는 야간 상설 공연을 보고 와도 좋다. 9월까지 금요일 오후 8시 경주 봉황대 특설 무대에서 볼 수 있다.
감포해안길
경주의 바다는 여전히 그 열기를 이어간다. 동해의 거친 파도와 주상절리의 장엄함, 그리고 천년 수도의 섬세한 결이 함께 어우러진 곳, 그 길 위에 경주의 또 다른 얼굴이 있다.
경주의 감포 해안도로는 ‘해파랑길 11코스’와 맞닿은 구간으로, 송대말등대에서 주상절리 전망대까지 약 20km에 걸쳐 이어진다. 차창을 열고 달리다 보면 바람과 빛, 그리고 바다가 만들어 내는 경주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감포해안길을 따라 한적한 바다를 만나고 싶다면 오류고아라해변과 나정고운모래해변에 들러보자. 이 두 곳은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잔잔한 파도가 어우러진, 경주를 대표하는 두 해변이다.
그중 오류고아라해변은 1㎞의 고운 백사장과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여름에는 모래찜질로, 가을 이후부터는 해변 낚시 명소로 사랑받는 곳이다.
소나무숲에는 오류캠핑장이 조성되어 있어 텐트, 카라반 캠핑이 모두 가능하다.
전촌항 근처 나정고운모래해변은 이름처럼 곱디고운 모래가 인상적이다. 파도가 잔잔하고 산책길도 조성이 잘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도 인기다. 이곳 역시 오토 캠핑 명소로 알려져 있다.
송대말등대
감포항 근처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끝자락에 자리한 송대말등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소나무가 펼쳐진 끝’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자연과 인간의 역사가 함께 숨 쉬는 곳이다.
1955년, 암초가 많은 감포 앞바다에서 배들의 길을 밝혀주기 위해 세워졌으며, 현재는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그 옆 감은사지 석탑 모형을 본떠 만든 5층짜리 한옥 등대 건물을 지어 빛 체험전시관과 기존 등대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 등대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빛 체험전시관’으로 운영되며 예술적 감각과 이야기를 더했다.
2025년 감포항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관된 이곳은 국내 유일 디지털 미디어 시상식인 ‘2021 앤 어워드 시상식’에서 그랑프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각각의 전시실에서는 경주 앞바다와 감포항 등대를 주제로 해양문화의 역사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아트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관을 나오면 작은 산책길이 나오는데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감포항과 이어진 방파제가 펼쳐지고 그 끝에 감은사지 3층 석탑을 음각화한 독특한 등대가 보인다.
왼쪽으로는 절벽 위 송대말 등대가 바다가 하나의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송대말등대 전망대에서 바다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현지인만 알 것 같은 해변이 나와 조용히 바다를 감상하기 좋다.
그리고 좀 더 걸어가면 바닷가 마을이 나오는데, 좁은 해안 길을 따라 마을 척사길 담장과 옹벽에 색색의 벽화가 빼곡하다. 바다의 물결, 고래와 거북이 등 경주의 바다 이야기를 담은 벽화들이 드라이브하거나 걷는 이들에게 생동감을 더한다.
감포해국길 – 바다와 예술이 꽃피는 길. 소박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다면 근처 감포항 해국길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감포항 마을에 조성된 이 벽화 거리는 마주 잡은 깍지 손처럼 이야기를 품은 ‘감포깍지길’의 한 코스로, ‘제4구간–골목으로 접어드는 길’에 해당한다.
연보랏빛 해국이 마을 담장마다 그려져 있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작은 바다 정원이 펼쳐진다. 특히 계단 전체를 해국으로 장식한 구간은 놓치지 말아야 할 대표 포토존이다.
10~11월에는 바닷가 바위틈이나 골목길 주변에서 자생하는 해국을 직접 볼 수 있어, 벽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전촌용굴
바다의 신이 머문다는 전설을 간직한 전촌용굴은 천연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된 해식동굴이다. 끊임없이 파도에 깎인 절벽과 푸른 동해가 어우러져 장엄한 풍경을 만든다.
이곳은 사룡굴과 단용굴, 두 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사룡굴은 동서남북을 지키는 네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해 ‘사룡굴’이라고도 불리는데, 쌍용굴이라고도 불린다.
하나의 절벽 아래 뚫린 두 개의 구멍을 보니 실제 용이 드나들었던 곳 같은 느낌이 든다. 파도가 남긴 세월의 흔적이 암벽에 층층이 새겨져 있고, 굴 안쪽에서는 파도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사룡굴 옆에서 잠시 바다를 바라보며 마침 쉬고 있던 주민에게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셨다. 시금치밭에서 일을 하고 이곳에 와 잠시 바다를 보며 쉬는 중이란다. 바다는 이방인에게는 여행의 쉼이 되고, 주민에게는 일상 속 휴식이 되어준다.
다음은 단용굴로 향한다. 단용굴, 사룡굴 모두 전촌리 해안 절벽 아래 자리해 가는 길에도 탁 트인 바다를 감상할 수 있어 좋다.
파도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먼 수평선이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단용굴은 사룡굴보다 바다 쪽으로 깊게 열려있어 밀물 때는 대부분 바닷물에 잠기는데 썰물 시에도 바다 쪽으로 열려 있어 접근이 쉽지 않다.
물때를 확인하고 가거나 안전하게 멀리서 바라보는 것도 추천한다. 물이 빠진 시간대에는 굴 안쪽까지 빛이 스며드는 장면을 볼 수도 있다. 그 풍경은 마치 바닷속에 열려 있는 또 하나의 하늘 같다.
읍천항 & 주상절리전망대
전촌용굴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감포해안길의 마지막 휴식지, 읍천항에 있는 공원은 바다 전망 탐방로와 잔디광장이 어우러진 작은 해안 공원이다.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과 주상절리 전망대와 이어져 있어 드라이브를 마친 이들이 잠시 머물러 바다를 바라보며 쉬어가기 좋다.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공원을 지나 바다를 따라 걷다 보면 풍경이 조금씩 달라진다.
읍천항에서 약 10분 남짓 걸으면 양남 주상절리 전망대에 닿는데 탐방로를 따라 이어지는 이 구간은 감포해안길의 하이라이트다.
걷는 동안 용암이 식어 만들어낸 육각형 암석 주상절리가 바다와 함께 펼쳐진다. 자연이 만든 최고의 조각 작품이자, 감포해안길을 완성하는 풍경이다.
감포해안길의 정착지인 주상절리전망대에서는 특히 부채처럼 펼쳐진 주상절리의 형태를 잘 볼 수 있다. 위로 파도가 부딪치며 하얀 물보라가 솟구친다.
파도와 절벽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바다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자연이 세월의 조각칼로 빚은 풍경은 감포해안길 여행의 마지막을 완성하는 최고의 장면이다.
이 외에도 바닷속에 잠든 문무대왕릉과 그 유지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감은사지 삼층석탑은 감포해안길에서 놓치기 아까운 역사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