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예정된 정치 일정에 없던 대선으로 새 정권이 탄생했다. 선거를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이번 대선은 상대방의 어처구니없는 자살골로 승부가 뒤집어진 경기와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선수가 공을 상대편이 아닌 자기편 골대로 차 넣은 셈이다.
전임 대통령이 느닷없는 계엄 사태를 일으키지 않고 어려움을 견디며 그대로 자중했더라면 이번에 당선된 대통령은 아마도 지금쯤 재판 결과에 의해 정치적으로는 재기불능 상태에 이르렀을 것이고, 설사 또 다른 이유에 의해 선거가 치러졌더라도 출마 자격을 잃고 정치생명이 끝났을 것이다.
이재명 현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인생 최대의 은인이나 그 이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이고도 상상하기 어려운 반전극이 연출됐다. 뜻밖의 행운을 얻은 자가 그 획득 과정에 대한 분석이나 성찰 없이 그 횡재를 즐기려고만 한다면 또 다른 반전이 있을 수도 있다.
우리의 정치는 민주주의 체제이면서도 승자 독식의 원칙을 취하고 있다. 행정과 통치 담당인 대통령이나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는 모든 후보자 가운데에서 단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사람이 이기는 구조다.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어쩔 수 없는 취약점 중 하나다.
이긴 측이 자신의 승리를 똑바로 보면서 성찰하고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후보의 전체 투표자 지지율은 과반에 못 미쳤다. 절반 이상의 국민이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경거망동한다면 다른 심판이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회의원선거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승자 독식 구조의 소선거구제 덕분에 지난해 총선에서 압승했다. 당시의 정당별 전국 투표자 지지율을 합산해 보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55:45 정도밖에 안 되지만 의석수는 현저하게 차이 났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정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이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절대다수에 편승해 입법 권력을 마구 휘둘러 왔다.
대의 민주주의의 요체는 견제와 균형이다. 마치 정삼각형 모양과 같이 행정, 입법, 사법이 서로 협력하면서도 서로 견제해서 정상적인 균형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한 원리다. 그러나 새 정권과 국회의 절대 다수당은 사법부의 기능과 판결 결과를 노골적으로 견제하거나 재판 결과를 자기편에 유리하도록 만들기 위한 여러 입법이나 제도적 조치들을 획책하고 있다.
이는 법치주의 원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를 악용해 사실상의 독재 국가를 지향하는 노골적인 움직임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한 축인 사법부(司法府)를 개인의 비리 방탄을 위한 사법부(私法府)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동서양이나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을 포함한 모든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자세 중의 하나가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는 격언이다. 다시 말해 남의 오얏을 따는 것으로 오인되는 비슷한 흉내조차도 내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만약 흉내나 몸짓이 아니라 실제로 오얏을 따먹어 놓고도 그것이 문제없다고 큰소리치고, 오히려 사후적으로 법과 제도까지 고쳐 가며 변호하며 마땅히 받아야 할 응징을 소급해서까지 무효화시키려 해선 곤란하다.
우리가 이전의 후진국 상태인 독재 국가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노골적인 의사 표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선거의 투표나 개표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특정인을 잘 알면서도 여러 후보 중에서 1등으로 뽑아 준 유권자, 즉 국민도 일단의 최종 책임을 면할 길은 전혀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짚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