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불 대재앙이 농민들을 피울음나게 했다.청송 사과밭은 쑥대밭이 됐고, 영양 고추, 의성마늘 밭에는 거무튀튀한 재만 남았다. 이번 산불로 의성·안동·영양·영덕·청송 등 5개 시·군에서 농작물 3,414헥타르(㏊)가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마늘과 사과를 비롯해 송이(영덕), 고추(영양) 등 특산물의 생산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사과와 복숭아 등 과수 농가의 경우 산불로 나무가 그을리는 등 상하게 되면 수확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나무가 살아남았더라도 오랜 시간 연기를 흡수하거나 재 등에 노출돼 정상적인 생육도 기대하기 어렵다.이번 산불의 피해지역은 농산물 주요 산지여서 향후 농산물 물가 상승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의성군은 연간 9,700t의 마늘을 생산하는 전국 최대 마늘 주산지다. 파와 쪽파 등 재배도 활발하다. 청송군은 연간 80,000t의 사과를 생산하는 국내 대표 사과 산지다. 국내 전체 사과 생산량의 약 10%가 청송에서 나온다. 영양군은 대표적 고추 생산지다.       ● ● 청송사과 직격탄 화마의 직격탄을 맞은 경북 지역은 국내 대표 사과 주산지다. 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 등 5개 시·군의 사과 생산량은 2023년 기준 전국 사과 생산량의 37.8%로 40%에 육박한다. 경북 도에 따르면 의성과 안동에서만 각각 1,835㏊, 1,095㏊의 피해신고가 들어오는 등 경북 지역 과수원 3,701㏊(잠정)가 불에 탔다.지난해 전국 사과 재배면적의 11.1%에 해당한다. 피해신고 기준으로만 따지자면 사과 10상자 중 1상자꼴로 재배지가 피해를 입었다는 계산이 나온다.산불로 인한 막대한 농가 피해는 물론, 2023년 사과 대란 재현 등 먹거리 물가 상승이 크게 우려되고 있는 이유다.피해농가는 “정부가 3,000평에 800만원인가를 준다고 하는데 그건 묘목값도 안 된다”며 “보상금 받아 올해 넘기고 나면 내년부터는 뭘 먹고 사냐”고 강조했다. 나무들이 싹 다 타버렸는데 묘목 심어서 수확하려면 또 5년 기다려야 한다. 5년 후도 걱정이다. 정부에서 집 한 채당 3,600만원인가 준다고 한다. 농민들은 “그걸로 몇 평이나 집을 새로 지을 수 있겠냐”며 “앞으로 누가 마을에 들어와서 집을 짓고, 사과 농사를 다시 지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 `金사과` 추석이 벌써 두렵다사과 가격이 들썩이는 모양새다. 산불로 지난해 나타났던 ‘금(金)사과’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산불로 사과 저장 창고가 피해를 입으면서 사과 도매가격은 들썩이고 있다. 안동시농산물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부사(상·20kg 박스)의 주간 평균 도매 가격은 지난달 중순 7만 원대에서 산불 발생 후인 하순 9만 원까지 치솟았다. 이달 들어선 8만 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산불이 올해 사과 생산량에 미칠 영향은 현재로선 구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달 중하순 꽃이 피어봐야 생산량을 예측할 수 있다. 지금까지 3,000ha에 달하는 과수원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해당 지역의 주요 사과 산지는 물론 일부 저장창고까지 피해를 봐 당장 다음 달부터 대형마트를 비롯한 소매 유통채널의 사과 판매가가 오를 가능성이 점쳐진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경북 안동과 청송, 의성, 영덕, 영양 등의 사과 재배지는 물론 저장창고도 일부 소실되는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에서는 전체 저장창고의 10~15%가량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통상 햇사과는 여름이 시작되는 7월부터 출하된다. 그전까지는 전년도 10월께 수확한 저장 사과(부사)가 유통되는데 저장창고가 화재 피해를 보면서 출하량이 줄어 돌발적인 수급 불안을 초래했다.   안동시농산물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부사(상·20㎏ 박스)의 주간 평균 도매가는 지난달 중순 7만원대에서 산불 발생 후인 하순에는 9만 원까지 치솟았다가 이달들에선 8만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매일 경매로 형성되는 도매가의 변동성이 산불 이전 10~20%에서 최근 20~30%로 확대된 게 불안 요소다. 전국 사과 재배 면적과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경북 북부지역의 수급 불안은 전체 사과 도매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전국 상품이 모이는 서울 가락시장의 주간 평균 부사 도매가(상·10㎏ 상자)를 보면 지난달 중순까지 6만 원 초반이던 시세가 하순에는 7만 원에 근접했고 이달 첫 주에는 8만원 선을 넘어섰다. 이달 둘째 주에 7만 원 중반대로 다시 떨어지긴 했으나 가격 흐름은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다. 2023년 이상 기후로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금(金)사과’로 불릴 만큼 가격이 치솟은 후 지난해 4월 중순까지 7만 원대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추이를 보인 것과 대비된다. 산불에 따른 저장창고 피해가 햇사과가 출하되기 전인 오는 6월까지 단기 사과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면 재배지 피해는 올해 하반기 이후 수급을 좌우할 악재로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번 산불로 사과 재배면적 3,000㏊(헥타르·1㏊는 1만㎡)가 직간접적인 피해를 본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국내 전체 재배면적(약 3만 4,000㏊)의 9%에 해당하는 규모다. 산불로 인한 사과 재배의 직간접적인 피해가 현실화될 경우 생산량이 회복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 ● 의성 마늘, 고추 모종 하나 남지 않아영양군의 지역 특산물인 ‘영양고추’다. 영양군은 국내 최대 규모의 고추 주산지로 불린다. 인구 1만 5,500여명 남짓한 인구 중 40%가 고추 농사를 짓는다. 지난해 기준 고추 연간 생산량은 3,486t, 재배면적은 1,291ha(390만 평)에 달한다. 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크고, 여름철 기후가 서늘한데다 일조시간이 길고 연평균 강우량도 적어 고추를 재배하기 좋은 환경을 갖췄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영양고추는 매운맛이 적당하고 당도가 높은데다 고춧가루가 많아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산불 대재앙으로 모든것을 잃었다. 고추 모종 하우스가 불타면서 그 안에 심긴 모종도 전부 탔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삶의 터전과 생계 수단을 완전히 잃어버린 농민들이 탈농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오죽하면 오도창 영양군수가 정부를 향해 “도와달라.”며 공개 메시지를 냈다. 정부 대응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반증하는 사례라 논란이 예상된다. 오도창 영양군수는 지난달 28일 호소문을 내고 “산불 진화에 가용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했으나 역부족”이라며 “사흘 동안 기상 악화로 헬기가 전혀 지원이 안 됐다.”고 밝혔다.   오 군수는 “영양이 불타고 있다.”며 “완전 진화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지원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오 군수의 발언은 정부나 경북도로부터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함에 따른 ‘폭로’에 가깝다. 공개적으로 정부당국에 도움을 호소한 것이다. 오 군수는 급기야 고령자가 대부분인 군민에게 “불끄기를 도와달라.”고도 호소했다. 영양 인구는 1만5271명으로 70~80대 고령자가 상당수다.   고령자들에게까지 호소할 정도로 상황이 절박함을 나타낸 것이다. 의성·영양·안동 등 고추 주산지의 시·군에선 이씨처럼 피해가 발생한 농가를 대상으로 빠르게 모종을 공급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모종을 심더라도 농기계가 없는 탓에 방제 등 영농도 문제다. 그만큼 경영비를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성 한지마늘밭의 푸릇했던 잎은 누렇게 변했다. 마늘통이 굵어지는 봄철인데 모종까지 말라버렸다. 영양 석보면은 고추 모종을 키우던 비닐하우스가 녹아내렸다. 영남 산불은 완전 진화됐지만 불안감은 꺼지지 않는다. 숲을 가꾸는데 30년, 태우는데 3초다. 불탄 토양이 온전히 회복되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은 65%가 사람 손에서 시작됐다. 이쯤 되면 4월 입산금지로 청명·한식이 없어질지 모를 일이다. 산불로 영남지역의 특산물은 씨가 마를 지경이다. 농가들의 한숨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면 100종의 생명체가 같이 사라진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조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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