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어항 강구항··· 동해안 일대
주요한 ‘어업기지’ 성황 이뤄···영덕군은 강구면은 강어귀 있는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골목의 삼사길 따라삼사해상공원 오른다명승 절경 찾아다니며수련하던 영랑, 술랑남석랑 3명의 화랑이영덕 재궁산에 머물며수련했다는 전설이다그들 세 화랑을 삼선랑이후 시간이 흐르면서삼시랑으로 변했다···옛 재궁산이 지금의삼사해상공원이다강구면은 경북도 영덕군의 면이다. 넓이는 36.81km이다. 올 4월 30일 현재 총 인구수는 5,557명이다. 남자 2639명, 여자 2,918명이다. 세대수는 3301세대, 세대당 인구는 1.68명, 남여 비율은 0.9다.강구면은 경상북도 영덕군 남동쪽에 있다. 강구·오포·화전·상직·원직·금호3·금진·삼사·소월·하저리 등 10개 법정리와 22개 행정리로 이뤄져 있다.
● ● 강구면은 어떤곳
강구면은 강어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강구면은 1934년 4월 1일 군 행정구역 개편 때 새로이 신설된 면이다. 이때 조선시대 동면·오보면의 하저·금진·소하3개 동과 중남면의 상검·하직·상직·화전(·오포·소월·삼사·강구등 8개 동이 합쳐져 강구면에 속해졌다. 이후 면 구역의 변경과 면명의 개칭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5월 1일 군조례 제972호에 의해 강구면 내의 동을 리로 개칭했다. 1990년 1월 3일에는 군조례 제1146호에 의해 종전의 하직리를 원직리(元直里)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구면은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낙동정맥의 영향을 받으면서 높이가 높은 서쪽의 삿갓봉(320m)을 기점으로 동쪽으로 경사진 지형을 가진다.
영덕군의 젖줄인 오십천하류에 해당하는 강구면 금호리와 원직리, 오포리 일대에는 오십천의 범람으로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지만, 강구면의 다른 지역은 대부분 산지로 이뤄져 있다.
해안은 암빈해안으로 경지가 부족, 연안 및 그 지류의 해안에 충적토로 된 농경지가 펼쳐진다. 강구면의 2020년 말 면적은 36.90㎢이다.
경계는 남쪽으로 남정면, 북서쪽으로는 영덕읍, 서쪽으로는 달산면과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동해와 접한다.
동해로 유입되는 오십천 하구에는 천연의 어항인 강구항이 있어 동해안 일대의 주요한 어업 기지의 하나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강구리를 중심으로 어업 활동이 이뤄지며, 게·노가리·명태·쥐치·도루묵·꽁치·오징어·미역·전복 등이 잡힌다. 오십천의 은어는 예로부터 유명하다.
동해안을 따라 부산~강원도 고성군까지 이어지는 국도 제7호선과 함께 2016년 고속국도 제30호선인 당진영덕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접근성이 높아졌다.
영덕대게타운 거리에 방문객이 많아지면서 상업이 발달했다. 부근에 오포3리, 하저해수욕장 등과 삼사(三思)해상공원, 영덕해파랑공원 등이 있어 관광산업이 활발하다.
● ● 강구항 군사적 요충지
지세는 낙동정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관계로 서쪽은 높고 동쪽은 경사진 지세를 가진다. 군의 젖줄인 오십천이 금호와 원직리 일대에 넓은 들을 만들면서 동해로 유입되고 있다. 이 강의 하구에는 천연의 어항인 강구항이 있어 동해안 일대의 주요한 어업기지의 하나로 성황을 이룬다.
지계는 남쪽으로 남정면과 접하고 있다. 서북쪽으로는 영덕읍, 서쪽으로는 달산면과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동해와 접하고 있다.
읍내를 지나는 주요 하천으로는 달산, 지품을 지나오는 오십천이 읍을 서에서 남으로 흘러 강구항을 지나 동해로 들어가고 있다. 덕곡리를 가로질러 흐르는 덕곡천이 삼각주 공원 앞에서 오십천 본류와 합류, 강구항으로 흐르고 있다.
교통으로는 면을 가로질러 지나가는 7번 국도와 달산과 강구를 연결해주는 군도 6호가 있다. 강구와 축산, 영해를 연결해 주는 지방도 918번인 강축도로가 강구에서 시작하고 있다.
현재 이 도로를 따라서 강구와 축산, 영해에 이르는 해안의 아름다운 절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면내의 금진과 금호리를 이어주는 농어촌 도로가 해안과 내륙을 이어주고 있어 면내의 교통은 편리하다.
면내를 통과하는 하천은 약 40㎞의 길이와 유역면적이 약 30㎢인 오십천이 있다. 하구에 위치한 강구항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천연항으로 오래 전부터 동해안에 있어서 어항과 군사적 요충지다.
강구항이 현재의 형태로 갖춰지기 시작한 것은 1900~ 1901년 부터이다. 일제가 한반도를 식민지화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때다. 일본인 어부들이 강구 앞바다의 풍부한 어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몰려올 때이다.
이들은 강구항을 이용하기 위해 오십천 상류로부터 내려오는 토사들이 항내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것을 여러 차례 준설한 후 임시정박지로서 강구항을 이용, 그들의 어업기지로 삼았다. 이후 일제는 자국민들의 어업기지화를 위해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축항을 축조하는공사를 강구항에다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때가 1919년부터이다.
● ● 1919년 8월 대홍수 50명 사망1919년은 3·1만세의거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른바 영해를 중심으로한 전군 만세의거다.
이 해 8월 대홍수와 태풍으로 오십천 하류지역인 강구는 불어난 강물과 밀려드는 파도로300호의 민가가 침수됐다. 60호가 파괴됐다. 사망자가 50여명이나 발생하는 대참사다. 대참사 후 지역유지 및 일제의 관리들 사이에서 축항의 설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1927년 2월 20만원(도비)의 예산을 들여, 공사를 시작했다. 1930년 5월 1차 공사를 마무리 했다.
그해 7월 태풍으로 1차 공사에 의해 축조됐던 축항이 막대한 피해를 입어 다시 1931년 7월 공사비 18만9000여원을 투입, 제2차 공사에 들어갔다.
1934년 3월 2차 공사를 마무리했다. 1934년 4월 공사비 13만원을 들여 물량장 및 계류장시설, 여타 시설들을 보완하는 공사를 했다. 1936년 2월 3차 공사를 끝냈다.
완성된 강구항 규모는 도수제인 남쪽 방파제의 길이가 255m, 북쪽 방파제 길이가 340m, 물량장 및 호안축대가 500m로 어엿한 항구의 형태를 가졌다. 광복 이후에도 여러번 증, 개축이 돼 오늘과 같은 규모로 확장됐다. 앞서 강구항은 국가의 중요한 군사기지가 설치됐다.
조선시대 전기(前期)인 중종(재위 1506~1544)때에 순변사 고형산이 둘레 1490척, 높이 9척의 돌로 오포성을 쌓고는 만호진(萬戶鎭)의 본영으로 삼아 해상으로 침입하는 왜적들을 방비하는 전초기지로 삼았다.
이 결과 조선시대 후기인 고종8년(1871) 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을 경계하기 위해 연안 일대에 척화비를 세울 때 강구항에도 이 비가 세워질 정도로 중요한 항구였다.
● ● 강구항 원양어업 전진기지강구항은 연안과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연간 수천톤의 수산물이 거래되고 있다.
강구항을 중심으로 홍게, 고동, 명태 등을 이용한 수산물 가공공장이 여러 곳에서 가동되고 있어 지역경제에 많은 보탬이 되고 있다.
면내의 농경지로써는 비옥한 토질 덕분에 양질의 쌀 생산지로유명한 오십천 유역의 금호평(錦湖坪)과 직천평(直川坪)에서 논농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내륙 산간 및 해안을 따라서 일부 밭농사도 이뤄지고 있다. 면내의 대체적인 경제적 기반은 반농반어(半農半漁)의 형태가 주종을 이룬다.
강구면의 해안선은 주로 바위로 이뤄져 있다. 전복, 미역, 김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다. 육지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급격하게 깊어지는 수심으로 연안 어장이 발달, 대소의 삼각망, 정치망 등이 연안 바다에 펼쳐져 있다. 성어기에는 많은 물량의 고기를 잡아서 높은 어획고를 올리고 있다.
1987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한 삼사해상공원은 강구항의 아름다운 전경과 동해가 한눈에 펼쳐지는 관광명소로 이름이 높다.
1997년 12월 준공된 경북대종은 그 소리와 모양이 웅장하고 아름답기가 그지없어 수많은 인파가 연중 끊이지 않고 있다.
매년 1월 1일의 해맞이행사 때에는 수만명이 동시에 몰려 일대장관을 이룬다. 1999년 11월에 개장된 삼사해상 야외공연장은 3,000여석 규모의 야외공연장으로 문화공간이 부족한 이 지역의 문화 창달에 커다란 기여를 하고 있다.
● ● 강구면 마을 유래
▲강구리(江口里)강구리 리명(里名)의 유래는 오십천 강 어구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을 개척한 이는 지금부터 약 400년전 안씨(安氏)와 이씨(李氏)라는 두 어부가 태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이곳에 대피,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盈德縣) 중남면(中南面) 지역이었다. 갑오경장(甲午更張) 뒤인 1895년(高宗 32년) 5월 26일 칙령(勅令) 제98호로 현을 군(郡)으로 개칭할 때 영덕군에 속했다. 새마을이 생김에 따라 신강(新江)과 구강(舊江)으로 나눠 불렀다.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는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강구동으로 하여 영덕면(盈德面)에 속했다.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과 동시에 강구면에 속했다. 그뒤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강구동은 강구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구역상 1, 2, 3, 4리로 분동돼 있다.
강구 1리는 일제하인 1917년 축항공사로 어선정박이 늘어나 어업전진기지로 변하자 갈대밭을 매립, 마을이 형성된 곳으로 많은 일본인들이 거주했다.
강구 2리는 일제시대에 변전소가 설치되면서 형성, 전기회사 마을이라고도 불렀다. 갈대밭을 매립한 시가지 평지에는 일본인들이 주로 살았다. 산비탈에는 한인들이 주로 살았는데, 이곳을 골마을이라고 불렀다.
강구 3리는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평지가 잠식되자 한인들이 이곳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웃한 골마을과 더불어 대추나무가 많아 대추밭골이라 불렀다.
강구 4리는 강구항이 어업항으로 번창하자 새로 생긴 마을로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신기동이라고도 했다.
강구리의 위치는 동은 동해, 서는 오포1, 2리, 소월리, 남은 오포3리, 삼사리, 북은 금진리, 금호리가 있으며 영덕읍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8km 지점에 있는 항구이다.
대추밭골 : 강구 북쪽에 있는 마을로 대추나무가 많아 이름이 붙여졌다.아릿마(下里) : 강구 아랫쪽에 있는 마을이다.웃마(上里) : 강구 윗쪽에 있는 마을.전기회사 : 강구 북서쪽에 전기회사가 있은 데서 붙여진 이름.봉의재(황석산) : 강구리 뒷편에 있는 산으로 조선시대에 황석산 봉수대가 있었다.
▲오포리(烏浦里)오포리 동명의 유래는 이 마을 뒷산이 오두(烏頭 : 까마귀 머리) 형국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고려시대 때 인동장씨(仁同張氏)가 마을을 개척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 지역으로써 오개 또는 오포라 했다. 1914년 3월 1일 부령(府令) 제111호에 의해 전국의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신강구를 병합 영덕면에 편입됐다.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속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오포리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오포1, 2, 3리로 분동돼 있다.
오포리 위치는 동은 오십천을 경계로 강구리와 마주하고 서는 화전리, 원직리, 남은 삼사리, 북은 금호리가 있다.
괘방(掛防) 마을 :오포 남쪽에 있는 마을로 원래는 들이었다 한다.신강구(新江口) : 괘방 동쪽에 있는 마을로 강구리 맞은편에 새로 이룩된 마을이다.
▲삼사리(三思里)삼사리 리명의 유래는 신라(新羅) 때 시랑(侍郞)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세사람의 시랑들이 이 마을에 숨어 살았다 해서 삼시랑골 또는 삼시랑이라 불렸다. 그 뒤 이 세 분을 생각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기도 한다.
이 마을은 8세기경(약1300년전) 안씨(安氏)라는 사람이 마을을 개척, 그 뒤 평산신씨(平山申氏)가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中南面)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피전동(皮田洞)과 호연동(浩然洞)을 병합.삼사동이라 했다.
이후 - 영덕면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삼사리의 위치는 동은 동해에 임하고, 서는 강고개(江峴), 남은 남정면 남호리, 북은 동사고개(同思峴)를 넘어 오포리와 연해 있다.
피전동(皮田洞, 稷田) : 삼사동 남동쪽에 있는 마을.호연동(浩然洞) : 삼사동 서남쪽에 있는 마을임.효자동(효자각 모퉁이, 돌찡이) : 삼시랑 동쪽에 있는 마을로 효자각(孝子閣)이 있는 모롱이를 돌아가면 있음. 효자각은 효자 밀양박씨 박완실의 효성을 기리고자 세운 정려각이다.
▲화전리(花田里)화전리 동명의 유래는 연화동(蓮花洞)의 화(花)자와 장전(長田)의 전(田)자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화전1리인 연화동은 19세기 전기(1830년경) 하씨(河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고 연꽃이 많아 연화동이라 했다.
2리인 장전마을은 14세기 후반기(1370년경)에 안씨가 마을을 개척하고 계곡을 따라 밭이 길게 있다 해서 장전이라 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화동, 눌미동을 병합하여 화전리라 하고 영덕면에 편입됐다.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되면서 강구면에 속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구역으로는 화전1, 2리로 분동돼 있다.
화전리 위치는 동은 오포리, 서남은 남정면과 경계를 이루고 북은 원직리, 상직리가 있다.
눌우미(訥宇美·訥美) : 화전동 서북쪽에 있는 마을임. 약 500년전 밀양박씨가 마을을 개척, 말못할 정도로 마을이 아름다워 눌미(訥宇美)라 불렀다.
안마 : 눌미 서쪽 안에 있는 마을.
양지마 : 안마 양지쪽에 있는 마을.음지마 : 안마 남쪽 음지에 있는 마을.
장밭골(長田): 화전리 북서쪽에 긴 밭이 있는 마을.
▲상직리(上直里)상직리 리명(里各)의 유래는 직천(直川) 윗쪽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으로 상직천(上直川)이라 했다.
현재 상직1리인 상직천 마을은 약 16세기경 야성김씨(野城金氏)가 정착했다. 상직2리인 양지·음지마을은 17세기경인 인조(仁祖) 연간에 박씨와 야성김씨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상직3리인 백산(배산, 배시이) 마을은 17세기 후기에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中南面)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이산동(梨山洞)과 신기(新基, 새마, 새터, 새모태), 중직(中直)을 병합, 상직동이라 했다. 영덕면에 편입,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상직리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1, 2, 3리로 분동돼 있다.
상직리의 위치는 강구면 소재지에서 약 10km 떨어진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로 동은 원직리와 영덕읍 남산리, 서는 달산면 대지리, 남은 화전리, 북은 영덕읍 천전리와 면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드내(直川) : 상직리와 원직리에 걸쳐 있는 마을로써 고드내가 흐르는데 고드내 옆이 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고드내란 개울로서 상직리 삿갓봉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에서 곧게 흘러(直川) 원직리에서 오십천으로 들어간다. 배산이(배산이, 梨洞, 梨山洞) :상직천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배나무가 많았다.
새마(새마을, 새모태) : 상직천 남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양지마을 : 상직천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음지마을 : 양지마을 남쪽에 있는 마을.
▲원직리(元直里)원직리 이명(里各)의 유래는 고드내(直川), 으뜸이 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직1리는 15세기 전기에 순흥안씨(順興安氏)가 마을을 개척했다. 마을 앞 냇물이 곧게 흘러 직천(直川)이라 했다. 원직2리는 15세기 전기에 영천이씨(永川李氏)의 이유(李儒)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中南面) 지역이다. 고드내 아래쪽이 되므로 아릿고드내, 또는 하직천(下直川), 하직(下直)이라 했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현동(長峴洞), 외직동(外直洞)을 병합, 하직동이라 했다. 영덕면에 편입 후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할 때 하직리라 했다. 1990년 1월 3일 군조례(郡條例) 제1146호에 의해 하직리를 원직리로 개칭(改稱),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1, 2리로 분동돼 있다.
원직리의 위치는 동은 소월리와 금호리, 서는 상직리, 남은 화전리, 북은 영덕읍 남산리가 있으나 주위에 장고개(長峴), 선병산, 노물봉, 진등잇재(鎭登) 등이 있다.
건너말 : 문방골 남쪽 개울 건너에 있는 마을.문방골(文傍谷) : 원직 남쪽에 문방우가 있는 마을.장고개(長峴) : 장고개 밑에 있는 마을임.
▲소월리(小月里)소월리 유래는 마을 지형이 반달같이 생겨 소월천(小月川) 또는 소월이라 했다. 일설에는 오십천 맑은 물이 흘러 동명을 소월(素月)이라 부르다가 뒤에 소월(小月)이라 했다 한다.
이 마을은 고려말(高麗末) 신안주씨(新安朱氏)가 마을을 개척, 그 뒤 평산신씨(平山申氏)가 들어와서 마을이 형성됐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中南面)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가 전국의 행정구역을 자의로 통폐합 할 때 소월동이라 불렸는데 영덕면에 편입 후 1934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강구면에 편입됐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소월리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소월리 위치는 동은 오십천을 건너 금호평야(錦湖平野)가 펼쳐져 있다. 서는 장고개(長峴) 넘어 원직리가 있고 남은 독미산(獨美山)과 선병산(仙屛山)이 감싸고 있고 북은 입내산(入來山)을 경계로 영덕읍 남산리와 접해 있다.
선병들 : 소월 남동쪽에 있는 들로 조선시대 전기에 오포수군만호영이 있었으나,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오포리로 이건했다.
▲금호리(錦湖里)금호리 유래는 큰 물가(오십천)가 되므로 “거무리” “거무” 또는 검호(劍湖), 거동(巨洞), 금동(今洞)이라 하다가 금호라 했다.
오십천이 한줄기로 합쳐지기 전에 현 금호리 앞으로 세 갈래의 강줄기가 흘렀다. 이것을 삼강이라 했다. 이 삼강의 물줄기가 호호대 앞에서 칼날같이 날카롭게 금호리 앞을 찔러 흐르기 때문에 검호(劒里)라고 부르기도 했다.
현 금호1리는 16세기 중기인 조선 중종(中宗) 연간에 울진임씨(蔚珍林氏)가 이 마을에 정착했다. 그 뒤 영천이씨(永川李氏)가 입주했다. 금호2, 3리는 약 15세기 초인 조선 초기에 평산신씨(平山申氏)가 마을을 개척했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中南面)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 제111호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금동, 하금동, 둔전, 소월리의 각 일부를 병합, 금호동이라 했다. 영덕면에 편입됐지만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 강구면에 속했다. 그 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할 때, 금호리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1, 2, 3리로 분동돼 있다.
금호리의 현 위치는 동은 금진리, 서는 원직리와 영덕읍 남산리, 남은 강구리, 북은 우곡리와 연해 있다.
아릿거무(下錦湖 : 아릿금호) : 금호리 아랫쪽에 있는 마을.웃거무(上錦湖, 웃금호) : 금호 윗쪽에 있는 마을.주막거리 : 중금호 서쪽 길가에 있는 마을.큰 마을 (中錦湖) : 금호리에서 가장 큰 마을.
▲하저리(下渚里)하저리 동명의 유래는 바닷가 백사장에 위치한 마을인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지금부터 약 600여년전 순흥안씨(順興安氏)라는 분이 마을을 개척하고 임리(林里)라고 하다가 그 뒤 기계유씨(杞溪兪氏)와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차례로 정착, 하저로 개칭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동면(東面) 지역이다.
동해 바닷가의 전형적인 해안 마을로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임리(林里)를 병합, 하저동이라 했다.
오보면(烏保面)에 속했다가 1934년 강구면이 신설됨에 따라 강구면에 속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할 때 하저리가 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하저리의 위치는 동은 동해, 서는 고불봉 고개를 넘어 영덕읍 우곡리, 남은 금진리, 북은 해안을 낀 강축도로를 따라 영덕읍 대부리가 있다.
숲밭(林里) : 하저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숲이 많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는 곳마다 웃음을 퍼뜨린 방학중(方學仲)이라는 인물이 이 마을 출신이라 한다. 8도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많은 일화(逸話)를 뿌렸고 이것이 민담(民譚)이 되어 우울하다가도 방학중의 이야기만 나오면 근심 걱정이 씻은 듯 사라지고 함박웃음을 터뜨리게 한 인물이다.
▲금진리(金津里)금진리 리명(里各)의 유래는 나루 뒷산에서 구리쇠가 많이 났으므로 쇠날기라 하다가 변해 쇠나리 또는 금진이라 했다.
이 마을은 지금부터 약 400년 전인 16세기 후반 김해허씨(金海許氏)와 밀양박씨(密陽朴氏)가 마을을 개척했다. 소하(小下) 마을은 약 300년전 김해김씨(金海金氏)가 마을을 개척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동면(東面)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하동을 병합, 금진동이라 했다. 오보면(烏保面)에 편입됐지만 1934년 4월 1일 강구면이 신설되면서 강구면에 속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할 때, 금진리가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행정동으로는 금진1, 2리로 분동돼 있다.
금진리의 위치는 동은 동해에 임하고 서는 금호리, 남은 강구리 북은 하저리가 있다. 남북으로 해안을 따라 강축(江丑)도로가 마을 앞을 지나고 있다.
소하동(小下洞) : 금진 남쪽에 있는 마을.아릿마 : 쇠나리 아래에 있는 마을.웃마 : 쇠나리 위에 있는 마을.
● ● 왕건이 방을 내걸다, 오포리후삼국 통일의 꿈 품고 서라벌로 가는 길, 막걸리 한잔에 근심을 털다.
남호해수욕장은 영덕 블루로드 D코스인 ‘쪽빛 파도의 길’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 8개 코스 중 2번째인 ‘특별한 게, 대게’ 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해수욕장 끝자락의 자그마한 남호리 마을을 지나 남정천을 건넌다. 천에는 단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고 탄탄한 인도교가 놓여 있다. 천과 바다와 모래밭과 갯바위가 어우러진 하구에는 세상의 모든 갈매기가 모인 듯하다.
동해를 앞마당으로 가진 횟집을 지나 7번국도 동해대로에 오른다. 뚜벅뚜벅 몇 걸음이면 어느새 남정면이 끝나고 강구면 삼사리가 시작된다. 삼사리, 해안산책로, 대게마을, 세 개의 간판이 나란히 가리키는 해안길로 내려선다.
100년 넘게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강구시장. 강구시장 바로 옆에 강구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한다. 이곳이 영덕블루로드 D코스 ‘쪽빛 파도의 길’의 종점이다. ‘특별한 게, 대게’의 길은 강구대교로 이어진다.
● ● 들어오면서, 살면서, 떠나면서 생각하는 삼사리저기 바다로 뻗어나간 것은 삼사리 해상산책로다. 총 길이 233m로 2011년 4월에 준공했다.
하늘에서 보면 은행잎 같기도 하고 소심하게 펼친 부채 같기도 하다. 산책로 따라 쪽빛 파도 위를 성큼성큼 걸어본다. 발아래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은 바다다. 먼 수평선이 동공 가득 망망히 들어차고, 뒤돌면 바다를 향해 창을 낸 삼사리의 집들과 크고 작은 가게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삼사 방파제 앞 쉼터 정자 곁에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최불암, 박상원, 최진실, 차인표, 송승헌 등이 출연했던 1997년 드라마다. 선장인 아버지와 도시로 떠난 자식들의 신산하고 팍팍한 삶을 진한 가족애로 표현했던 묵직한 드라마였다.
최불암이 연기한 캡틴 박의 직업이 대게잡이 어선 선장이었음을 기억해 내고는 흐뭇해진다. 맞은편 골목의 삼사길 따라 삼사해상공원을 향해 오른다. 삼사(三思)는 세 번 생각한다는 뜻이다. 들어오면서, 살면서, 떠나면서 생각한다는 의미다. 옛날에는 삼시랑(三侍郞)이라 했다 한다.
신라 때 시랑(侍郞)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숨어 지냈다고도 해서 생긴 이름인데, ‘삼시랑’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삼사’가 됐다고도 한다. 조선 연산군 때의 기록에는 삼사랑(三士郞), 정조 때의 기록에는 삼사랑(三思郞)이다.
여기에 세 명의 화랑(花郞) 이야기도 전해진다. 명승 절경을 찾아다니며 수련하던 영랑, 술랑, 남석랑 세 화랑이 영덕 재궁산에 머물며 수련했다는 전설이다. 그들 세 화랑을 삼선랑(三仙郞)이라 했는데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삼시랑으로 변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옛 재궁산이 지금의 삼사해상공원이다.
망망대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과연 삼시랑을 쉬이 상상할 수 있다. 왕건이 방을 걸고 하룻밤 묵었던 강구면 오포리 나비산. 괘방산이라고도 불린다.
● ● 오포해변삼사해상공원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어촌민속전시관을 지나 바다로 향하는 가파른 길을 총총 내려서면 강구해안길이다
길보다 낮은 집들이 늘어선 해안길을 따라가다 자그마한 모래사장을 만나면 오포리가 시작된다. 대개 강구면의 행정중심지를 강구라 여기기 쉬운데 아니다, 오포다.
오포리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수군이 주둔하던 ‘오포포’로 당시로서는 대규모의 군사기지였다고 전한다. 현재 강구면사무소 북쪽에 문전옥답으로 펼쳐져 있는 오포들이 옛날 오포수군 만호진터라고 한다. 싱그러운 솔밭 너머 오포해변이 가늘게 반짝인다.
솔숲을 헤치고 해변으로 나서면 넓게 트인 바다 건너 강구항이 지척이다. 커다란 대게 조형물이 번쩍 눈에 띄는 강구항을 바라보며 오포교를 건넌다. 정면에 나지막한 산이 누워 있다. 나비의 날개를 닮았다는 나비산이다. 괘방산(掛榜山)이라고도 부른다. 고려 태조 왕건이 방(榜)을 걸고 하룻밤을 묵었다는 산이다.
후삼국 전쟁이 한창이었을 때의 일이다. 1930년 1월, 왕건은 안동의 병산전투에서 후백제 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도움을 준 이가 재암성(현재 청송일대) 성주 선필(善弼)장군이다.
이 소식이 서라벌까지 전해지자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선필장군을 통해 왕건에게 서라벌을 방문해 줄 것을 청했다.
마침 동해안 일대의 110여 개 주, 군, 현이 모두 선필장군과 안동지역 성주들의 노력으로 왕건에게 항복하면서 왕건은 경주로 가는 길을 확보하게 된다.
7번국도 영덕구간은 삼국시대부터 경북 동해안 일대 교통의 중심지였다. 신라 소지왕은 487년에 역로를 처음 개설한 후 각 지방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교통망 개설과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삼국 통일 이후에도 신라는 중앙의 정령과 군수물자, 생산물 등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말과 마차 운행이 가능한 역로 정비와 개설을 국가의 중요 정책으로 삼았다.
그렇게 개설된 경주 중심의 교통망이 북해통, 염지통, 동해통, 해남통, 북요통 등 5개 대로다.
이 중 영덕은 경주에서 강릉을 연결하는 북해통에 속해 있었다. 당시 동해안의 중요 생산물이 북해통을 통해 경주로 운반되었고 대조영의 발해와도 연결돼 수많은 사신이 오갔다고 한다. 신라의 화랑도들도, 왕건도 이 길을 이용했으리라 추측된다.
왕건은 931년 2월, 최정예 기마호위병 50명을 이끌고 안동과 영양, 영해를 거쳐 남쪽으로 향했다.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 고려수군을 강구항과 오포포로 보내 사전 준비도 마쳤다. 왕건이 영덕 자부티 고개를 넘을 즈음 이미 해는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경주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왕건은 영덕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한다. 왕건이 방을 걸고 하룻밤 묵었던 그곳이 바로 강구면 오포리 나비산, 즉 괘방산이라 전한다. 이후 왕건은 경주를 방문해 한동안 머물렀고 4년 뒤인 935년 신라를 복속하게 된다.
● ● 강구대교 입구에서 왕건을 만나다영덕 태조왕건 동상과 수헐장터.
‘수헐(愁歇)’은 ‘나의 근심을 없애 주었다’는 뜻으로, 왕건이 역리 황씨가 지고 온 막걸리를 마시고 피곤함과 갈증을 단숨에 날려버렸다는데서 유래한다.
오포교 건너 7번 국도를 따라 강구파출소를 지난다. 도로 건너 괘방산 아래에는 1935년에 개교한 강구초등학교와 1919년에 개설된 강구시장이 있다.
100년 넘게 전통과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강구시장은 원래 3일과 8일마다 장이 서는 오일장이었지만 2003년도에 시장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설시장 겸 오일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각종 해산물과 활어회, 농산품, 생필품 등을 상시 판매하고 있지만 가장 활발히 거래되는 것은 역시 영덕대게다. 강구시장 바로 옆에 강구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한다. 이곳이 영덕블루로드 D코스 `쪽빛 파도의 길`의 종점이다.
‘특별한 게, 대게’의 길은 강구대교로 이어진다. 강구대교 입구에서 황금빛 왕건을 만난다. 그가 손에 쥔 것은 막걸리다. 이 조형물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왕건이 넘었다는 자부티 고개는 영덕읍 매정리와 축산면 고곡리의 경계에 있는 높이 115m의 고개로 현재 7번 국도가 지난다.자부티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한 왕건이 말안장 위에서 졸며 고개를 넘었다는데서 유래한다.
졸면서 넘는 고개라 `면현(眠峴)`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왕건의 행차 소식은 영덕에 파다하게 퍼졌다. 이는 화수리의 주등역(酒登驛) 책임자로 있던 역리(驛吏) 황씨(黃氏)의 귀에도 들어갔다. 황씨는 왕건이란 인물이 무척 궁금했다.빈손으로 찾아갈 수 없었던 황씨는 집으로 달려가 막걸리 단지를 통째로 짊어지고는 자부티 고개로 향했다.
졸며 고개를 넘던 왕건은 황씨가 지고 온 막걸리를 벌컥 마시고는 피곤함과 갈증을 단숨에 날려버렸다.왕건은 황씨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던 근심을 모두 풀어 주었으니 앞으로 너의 이름을 ‘나의 근심을 없애 주었다’는 뜻의 ‘수헐(愁歇)’이라고 하라!”이렇게 역리 황씨는 ‘수헐’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막걸리도 ‘수헐’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영덕의 막걸리 ‘수헐’은 근심을 없애주는 술이라 하여 영덕은 물론 인근 고을까지 각처로 팔려나갔다고 전한다.오늘 왕건의 술병은 비었고 그의 어깨너머로 대게 찌는 냄새 흔전만전하다.
● ● 강구를 빛낸 역사 인물
>> 김하구 선생김하구 선생은 1676년(숙종 2년) 병진 12월 초하루에 영덕군 강구면 직천동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황해도 수안현에 살았다. 고려 전리 판서위가 비조이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선생의 6대조인 김난서는 화양현감으로 계시면서 임진왜란 때 대구 파전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러 선무이등공신이 됐다. 고조 김흔도 역시 정유재란 때 창의군으로 창녕 화왕산성에 가서 곽 재우장군과 함께 큰 공을 세웠다.
선생의 아버지 휘는 세희고 호는 매창이라 하고 호조 참판이며 글을 잘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선창 장씨 종한의 딸이며 증 정부인이었다.
12살 때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이때, 가례에 따라 상례를 어른과 같이 엄숙하고 예절 바르게 치루고, 부지런히 배워 동당시에 합격하고, 임오년 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기해년에 문관에 합격했다.
1723년(경종 3년 계모)에 보태학관이 되고 청암 도찰방이 됐다. 영종 4년 호남에 반란이 일어나자 창의를 일으켜 여러 동지들과 함께 적을 치고 평정했다.
1765년(을유년)성균관 전적이 되고 사헌부 감찰이 됐다. 경술년에 병조 좌랑겸 춘추관 기사가 됐다가 해남 현감이 돼 부임했다.
그 곳 수재들을 뽑아 글을 가르치고 여씨향약을 본받아 미풍을 지키게 하고 부역과 세금제도를 고쳐 민폐를 없앴다. 그 곳 간사한 무리들과 아전들이 짜고 반정운동을 일으켜 그 책임을 지고 관직을 파해 고향 영덕에 귀양와 1년만에 풀렸다. 억울함을 당해도 개의치 않고 벼슬길에 뜻이 없어 가래나무 밑에 집을 짓고 거문고를 벗삼고 집 이름은 추암 거문고 이름은 뇌룡이라 하고 스스로 즐기며 살았다.
`입심이정`이란 가훈을 갖고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불평이 생기고 마음이 맑지 않으면 시가 생기지 않는다"하고 뜰앞에 매화와 대를 심고 일했다. 그 모습은 모두 세밀하고, 약간의 술을 빈번이 기울이며 거문고 소리에 의지하면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아 하늘에서 학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즐거울 때는 들을 소요하면서 30여 년을 이렇게 살다가 84세 때 나라에서 가선대부동지충추부사란 벼슬을 자손들의 부축으로 가서 받았다.
숙종 경진 7월 11일 87세로 세상을 떠나셨고 그해 10월 18일 구리골에 묘를 섰다.
<참고문현 : 추암집, 영영승람>
>> 봉건적 권위와 위선에 맞선 방학중방학중은 영덕군 강구면 하저리 출신 구한말의 인물이다. 당시에는 하저리가 영해군(현재 영해면) 소속이어서 ‘영해 사람 방학중’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출생 연대와 사망연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의 무덤도 영덕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학중은 전국 8도를 떠돌아다니는 언변이 좋고 유머 넘치는 익살스러운 사람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영덕 사람들은 아이들이 말썽을 피우거나 곁말 잘하는 사람을 일컬어 “이 방학중 같은 놈아”라고 했다.
방학중과 관련 있는 채록된 이야기만 150여 편에 이른다. 방학중 설화는 ‘상전의 음식 빼앗아 먹기’, ‘떡방아 찧는 여인을 속여 떡 훔쳐 먹기’, ‘주인의 편지 내용을 고쳐 주인의 딸과 결혼하기’, ‘순라꾼 속이기’ 등과 같은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야기 중에는 다소 거북하게 받아들여지는 내용도 있지만 민속학계에서는 방학중을 당시의 봉건적 권위와 위선, 도덕을 무너뜨리는 `마이너스`적인 영웅으로 해석하고 있다.
2013년 영덕군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기조 강연자로 나선 임재해 안동대 교수는 “역사적 인물로서의 방학중은 빈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생을 백수로 떠돌아다녔지만, 누구에게도 기죽지 않고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온 건달이다. 전설적 인물로서의 방학중은 못하는 것이 없는 기발한 재주꾼으로서 기득권층을 골탕 먹인 영웅적 인물이다”고 했다.
발표자로 나선 이강옥 영남대 교수는 "민중들이 방학중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것은 자기들의 은밀한 욕망을 대리 충족하는 의미를 가지면서도 내면의 부끄러운 부분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 ● 강구면 풍물거리 가볼만한 곳
>> 100년 넘은 강구전통시장강구전통시장은 영덕군 강구면 강구시장길 4(오포리 535-5)에 있다. 영덕에는 4개의 전통시장이 있다. 이중 장사시장은 쇠락, 제 기능을 잃은 상태다. 강구전통시장은 현재 영덕군에서 열리고 있는 전통시장 중 한 곳이다.
강구전통시장은 조선총독부의 `시장규칙`(1914년 9월)에 따라 영덕 지역의 시장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1919년 10월 개설됐다.
강구시장은 원래 강구면 시가지 중심부에서 개설, 1960년대 중반쯤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정기 시장과 상설 시장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일제강점기인 1919년 10월 3일 경북도 영덕군 강구면 강구리 345 일대에 개설됐다. 1960년대 중반쯤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1995년 시설을 정비, 재개장했다. 2003년 시장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상설 시장을 겸한 오일 시장으로 운영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강구전통시장은 터 면적 1만 23,710㎡, 건물 연면적 2,261㎡ 규모의 상가 건물형 상가이다. 점포 52곳 노점 148곳으로 구성돼 있다.강구전통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매 3일, 8일 개장)을 겸하고 있다.
2021년 4월 기준 상인 총수는 180명이다. 시장과 강구항을 중심으로 한 영덕대게와 회 판매가 활발하며 물가자미, 건어물, 자연산 송이, 복숭아, 문어, 오징어, 영덕사과 등 지역 특산물과 식료품·의류·잡화철물 등 다양한 생활필수품도 판매하고 있다. 강구전통시장은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강구시장과 강구항을 중심으로 영덕대게 판매가 활발이 진행되고 있다. 싱싱한 활어회도 상시 판매되고 있다.강구시장에서 10분내 삼사해상공원, 강구항(‘그대그리고 나’ 드라마 촬영지)등을 관람할 수 있다.
교통편 서울출발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 경동로(4시간 50분소요)경기도출발 : 중부내륙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 ⇒ 익산포항고속도로(4시간 30분 소요)부산출발 : 경부고속도로 ⇒ 동해대로(2시간 20분소요)대구출발 : 경부고속도로 ⇒ 익산포항고속도로 ⇒ 동해대로(2시간 소요)강원도출발 : 영동고속도로 ⇒ 동해고속도로 ⇒ 동해대로(4시간 10분 소요)
>> 강구항대게거리강구항에 가면 생동감을 만난다. 싱그러움을 가득 품은 영덕 강구항이다. 강구해파랑공원을 걸으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니,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기분이다.“그대 그리고 나” 1997년 MBC에서 방영, 최고 시청률 66%를 달성하며 지금도 역대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 중 하나로 회자되고있다.
강구항 대게거리는 강구면 강구대게길 31-2(강구리 475)에 있다. 강구항 일대에 있는 음식테마거리.강구항대게거리는 강구항 주변으로 길게 자리잡은 대게식당 거리이다. 강구항대게거리는 영덕의 특산물인 영덕대게 판촉과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됐다.
강구항대게거리는 1998년 ‘영덕대게’ 상표등록을 하고 2005년 12월 영덕대게특구로 지정, 2013년 음식테마거리로 지정됐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한국관광의 별’로 선정돼 이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대게거리에 설치했다.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 100선’에 뽑혔다.거리의 규모는 동광어시장 부근에서 강구대교 입구까지 약 977m에 달한다.
해안가를 따라 170여 개의 대게식당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이 외에도 강구항 영덕대게거리 공영주차장, 강구수협공판장, 대게직판장 등이 자리해 있다.매년 대게철이 되면 강구항 일대에서 영덕대게축제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강구항대게거리를 찾는다.
2016년 당진영덕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교통의 접근성까지 좋아져 관광객 유치에 한몫을 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관광 분야와 먹을거리 분야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영덕의 상징적인 곳이 되고 있다.
문화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의 ‘주요 관광지점 입장객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강구항을 방문한 관광객이 320만여 명으로 국내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확인됐다.‘2021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대상’ 시상식에서 영덕대게가 수산물 브랜드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 삼사해상공원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185-1에 위치해 있다. 동해의 맑은 정기가 서린 삼사해상공원은 청정바다를 한 눈에 바라볼수 있다. 주위의 경관이 아름다워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가족단위 행락인들이 줄을 잇는다.
1997년 1월 1일 처음 개최한 ‘해맞이축제’는 신년의 소망을 기원하는 사람들로 대성황을 이루었고, 이 행사는 매년 열리고 있으며 이어서 또 하나의 문화축제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5~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에는 지역음악동호회가 참여하는 관광명소 주말공연이 열려 삼사해상공원을 찾는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더해주고 있다.
삼사해상공원은 1988년부터 개발된 종합 유원지이다.
9m 높이의 인공폭포와 20m/t급의 천연 공작매화석, 기둥분수와 연못, 이북 5도민의 망향을 달래기 위해 1995년에 세운 망향탑, 경북도 개도 100주년을 기념, 세운 높이 420㎝, 지름 250㎝, 무게 약 29t의 경북대종 등이다.
경북대종 아래 1만 900㎡ 규모의 삼사 해상테마랜드에는 통나무 방갈로 11채와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1997년부터 해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이면 이곳에서 해맞이행사가 열린다. 주변에 경보화석박물관·장사해수욕장·풍물거리 등이 있어 1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빈다.
영덕읍에서 해상공원행 시내버스를 타면 5분 거리에 있다. 승용차로 가려면 7번 국도를 타고 영덕읍을 지나 7km 남쪽으로 내려가면 바다 쪽에 해상공원이 보인다.
>> 삼사유원지 20층 숙박시설 건설영덕군 강구면 삼사유원지에 도내 동해안 최초 지상 20층의 숙박시설이 들어선다. 3,200여억원의 예산을 쏟아붓는다. 대지 2만 1,872㎡, 연면적 3만 8,656㎡, 지하 4층 지상 20층 규모다. 이곳에 객실과 야외 풀장, 카페 등을 갖춘다. 도는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일대 삼사유원지에 지상 20층(최고 높이 70m) 숙박시설을 조성할 수 있도록 유원지 조성계획을 변경했다.
애초 삼사유원지 내 건축물 높이는 40m 이하(13층 이하)로 제한돼 투자 유치에 어려움이 있었다. 도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상 20층, 높이 70m 이하 숙박 시설 조성을 가능하도록 유원지 조성계획을 변경했다. 도에 따르면 한 민간 사업시행자가 투자자를 모집해 삼사유원지에 객실 402개를 갖춘 대규모 관광숙박시설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비 3,200여억원을 들여 대지 2만 1천872㎡에 연면적 3만 8천656㎡, 지하 4층 지상 20층 규모로 객실과 야외 풀장, 카페 등을 갖춘다는 구상이다.
삼사유원지는 관광 수요 변화와 강구항, 삼사해상공원 등 주변 관광자원과의 연계해 체류형 관광거점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도는 지난 3월 대형 산불로 관광산업 전반에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에서 도내 동해안 최초의 지상 20층 높이의 대규모 호텔·리조트가 들어서면 침체한 관광산업과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한다.
경북도는 “이번 유원지 조성계획 변경은 단순한 군 관리계획의 변경을 넘어, 영덕 삼사유원지를 동해안 체류형 관광의 랜드마크로 육성하는 계기가 돈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 이후 영덕의 관광과 지역경제 회복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 하저리해수욕장영덕군 강구면 하저리 474-2에 있다.강구면 해안도로 변에 위치한 백사장 길이 약 1Km정도의 해수욕장으로 갓바위가 많아 낚시꾼들이 사시사철 많이 찾는 곳이다. 주변에 간이 횟집이 많이 들어서 있다.
영덕 해변은 아름답다. 지중해가 아름답다고 하지만 영덕 해변에서 보는 바다 빛깔은 지중해보다 더 아름답다. 바다 빛깔 곱고 사람들 친절하며 맛깔스런 음식이 가득한 해변이 다수다.
하저리해수욕장이 그렇다. 하저리해수욕장은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는 아름다운 백사장과 얕은 수심, 완만한 경사로 여행객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경북의 대표 휴양지이다. 가자미, 보리멸, 우럭 등이 잘 낚이기 때문에 바다 낚시터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높고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람으로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 하저리에 새로운 27홀 골프장 건설영덕군에 새로운 27홀 규모의 대중제 골프장과 대규모 리조트 단지가 들어선다.영덕 관광휴양을 위한 골프앤리조트 조성사업이 순풍에 돛단 격이다. 관광업계도 크게 반긴다. 동해중부선 개통으로 영덕역과 영덕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하저리해수욕장 근처에 리조트와 골프가 합쳐진 단지조성 때문이다.
지역민들은 “부산, 경남지역의 골퍼와 가족 모두를 끌어모으는 신의 한 수라”고 입을 모았다.
관광휴양에 적합한 골프앤리조트로서 동해안의 철도교통망개선으로 나타날 시너지효과는 작지 않다는게 이유다.
군은 지난 3월 ‘영덕 이스트원 골프앤리조트 조성사업에 따른 군관리계획 결정(변경)안’ 재공람 공고(영덕군공고 제2025-428호)를 통해 4월 4일까지 군관리계획 결정(변경)안을 공람한다고 군지를 통해 밝혔다.
공고내용은 지난 1월 3일 공개했던 사업 세부내역과 용도지역 결정(계획관리지역)에는 변화가 없으나 용도지역 전체를 관광휴양개발진흥지구(용도지구)로 신설했다. 영덕군의 ‘영덕 이스트원 골프앤리조트 조성사업’은 영덕 강구면 하저리와 대부리 일대 166만8453㎡(약 50만평)에 체육시설(대중골프장 27홀, 직원숙소 2개동, 저류지와 묘포장, 주요 도로 등)이 전체 터의 46.2%를 활용한다. 거의 절반 가까운 45.6%는 녹지용지(원형녹지 21%, 조성녹지 25%)로 나머지 8.2%는 클럽하우스/콘도(87실), 골프빌리지(16개동), 다목적 잔디광장을 포함한 캠핑장 등으로 꾸며진다.
사업의 시행은 영덕 오션비치 CC가 투자한 (주)이스트원이 맡아 1,700억원을 투입, 진행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군의 해안관광 활성화 전략과 연계되는 이 사업은 해안의 아름다운 경관과 자연자원을 활용한 고급 리조트 단지 조성이 핵심이다. 레포츠 특화지역에 맞춰 골프 대중화 흐름에 발맞춘 신규 골프장 조성으로 신규 일자리 창출은 물론 숙박·음식업 등 지역 상권에 미치는 경제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군은 지방세수 증대와 함께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주민 소득 증대에도 기여할뿐만 아니라 골프장과 리조트 방문객 증가에 따른 영덕군의 관광 브랜드 가치도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 어촌민속전시관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158-19에 있다. 2005년 12월 9일 문을 열었다. 어촌지역에서 사라져 가는 전통 민속과 문화를 발굴, 보전한다.
전통 어업문화의 계승발전은 물론, 관광객 및 자라나는 청소년의 새로운 볼거리 제공과 산 교육 학습장으로 활용한다. 무엇보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한몫하고 있다. 경북도내 처음으로 만들어진 어촌민속전시관은 가족단위의 체험 놀이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다.
건축면적 2,397m2(725평) 지하1층, 지상3층으로 꾸며졌다. 24대 (일반: 20대, 장애우: 4대)를 주차할 수있다. 전시시설, 체험시설, 3D입체 영상관, 카페테리아, 기념(특산)품 판매장, 옥외조형물이 있다.
맑디 맑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강구항과 연계된 풍력단지가 한폭의 동양화를 보듯 동양의 나폴리라 칭할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 할 수 있는 최고의 볼거리 관광명소다. 어촌 지역의 사라져가는 전통민속과 문화를 느낄 수 있음은 물론 다양한 체험과 3차원의 입체영상이 가족단위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있다.
제1전시실 : 영덕 푸른바다와 의 만남, 영덕어촌의 삶과 의식주, 영덕어촌의 놀이 및 문화, 동해안 별신굿, 어선의 제작과정, 내가 직접만들 어 보는 배, 대게잡이 당두리배, 영덕의 다양한 어구어법, 전통 어선을 선보인다.
제2전시실 : 어로도구 유물전시, 해저지형, 영덕 바다속의 비경, 항구체험, 대게의 일생, 맛으로 보는 영덕대게,대게잡이 체험, 해녀들의 삶, 어시장 뒷 풍경과 어시장, 천년의 역사를 지닌 영덕대게를 볼 수 있다.
3D입체영상관 대게왕자의 모험 : 기획전시물 영덕어촌의 100년사 / 부대시설 뮤지엄(기념 및 특산품 판매장) / 옥외전시조형 천하제일 대게(영덕어촌의 부를 상징)
관람료 면제대상(무료) : 영유아(만6세이하) 또는 경로우대자(만65세 이상) / 장애인으로서 장애인복지카드를 소지한 자 /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의 규정에 의한 국가유공자 /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으로서 장애인복지카드를 소지한 사람 / 공직선거법에 따라 투표참여하고 투표확인증을 가진 사람(당해선거의 선거일후 1개월까지 유효함) / 영덕군 명예군민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할인대상(20%)개인 : 성인 2,000원, 학생 1,000원단체 및 할인 : 성인 1500원, 학생 500원
관람시간 : 동절기 :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 하절기 :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휴관일 : 설날, 추석, 매주월요일(단, 월요일이 정부에서 지정하는 공휴일인경우에는 그 다음날)
김성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