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는 사랑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끝내 삶의 구조를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가지 못한 길’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는 길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스스로 선택한 갈림길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등 떠밀리듯 포기해야 했던, 갈 수 없었던 사랑의 경로에 가깝다.
중국 원작(영화 ‘먼 훗날 우리’, 소설 『춘절, 귀가』)을 바탕으로 한 이 리메이크는 이야기의 국적을 넘어 2020년대 한국 청년 세대의 감각을 정교하게 이식해 낸다. 꿈은 여전히 찬란하지만, 그것을 지탱할 자산과 안전망은 허락되지 않은 세계. 사랑조차 생존 앞에서는 유예될 수밖에 없는 시대의 풍경이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연출을 맡은 김도영 감독은 전작 ‘82년생 김지영’에서 보여주었던 문제의식을 이번 작품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확장한다. 그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여성의 삶이 현실과 충돌하는 순간을 정확한 감각으로 포착하는 감독이다.
주인공 정원(문가영 분)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의미를 증명해 주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보육원 출신인 정원이 대학생이 되어 다시 찾은 보육원에는 더 이상 익숙한 얼굴이 없다. 원장은 휴가 중이거나, 어느새 공간 자체가 사라졌다. 정원이 평생 집이라 믿어온 장소는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였고, 언제든 없어질 수 있는 불안정한 공간이었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여자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과연 누구의 집에서 머무를 수 있는가. 정원에게 집이란 “당신이 꼭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절대적인 안전지대다.
영화는 은호(구교환 분)와 정원의 사랑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랑이 어떻게 현실에 의해 닳아가는가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형 게임 개발을 꿈꾸는 은호는 창의성보다 복제를 요구받는 노동 현장에서 점차 소모된다. 가능성보다 효율이, 재능보다 자본이 앞서는 세계 속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잃어간다.
대학 시절 함께 공모전에 도전했던 친구들이 부모의 지원으로 집을 마련하고 사업 기반을 구축한 현실을 마주하는 장면은 깊은 잔상을 남긴다. 상속과 자산이 출발선을 결정하는 구조 앞에서, 노력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간극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랑은 이 불균형 앞에서 서서히 무너진다. 정원은 은호에게 ‘집이 되어주어서 고마웠다’고 느꼈지만, 생존이 위협받는 순간 그 집은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공간이 된다. 은호는 정원을 “심장을 떼어줄 만큼 사랑한다”고 말한다. 심장은 내어줄 수 있지만, 삶의 기반이 될 집과 생활비는 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그 사랑은 시작과 동시에 한계를 품는다.
비 오는 날, 가방 하나를 멘 채 떠나는 정원을 향해 은호는 우산을 들고 달려가지만 지하철 문 앞에서 멈춰 선다. 우산 하나 건네지 못한 채 닫히는 문. 그 장면은 이 사랑이 끝내 건너지 못한 현실의 경계를 상징한다. 뜨거웠던 감정은 빈곤 앞에서 무력하게 멈춰 선다. 헤어지고 나서 10년 후 외국 공항에서 조우한 이들은 다시 은호의 숙소를 공유하며 흑백의 대화를 나눈다. 마지막 포옹을 끝으로 헤어져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두 사람에게, 가지 못한 길은 실패였을까. 선택하지 못한 길은 마음 깊은 곳에서 서로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고 있을 것 같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에 공감한 건, ‘만약에 우리’는 특정 세대의 멜로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를 살아가는 다수의 감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 선택을 비난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이 어떤 조건 속에서 흔들렸는지를 조용히 기록할 뿐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편의 멜로를 넘어, 감성의 시대사이자 사회의 초상으로 남는다.